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레 엄마가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사랑스러움’, ‘감격스러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열 달간 초음파 사진으로 본, 까만 화면 속의 아이 모습이 익숙했어요. 뱃속에서 꿈틀꿈틀 태동이 느껴질 때는 제 안에 새로운 생명체가 있다는 느낌이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몸 밖으로 나온 아이를 마주하자 ‘이 아이가 정말 내가 낳은 내 아이라고?’와 같은 생각이 들면서, , 괜스레 비어있는 헛배를 어루만지게 되었습니다.
2017년, 2020년, 2021년 세 번의 출산을 했습니다. 출산을 거듭하고, 아이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나도 제법 그럴듯한 ‘엄마’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육아를 거듭하면서 ‘육아 경력직’이 되었고, 젖을 물리는 일도, 기저귀를 가는 일도 제법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술술님이 생각하시는 ‘엄마’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생각했던 엄마는 아침에 아이들을 기관에 등원시키고,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저녁엔 퇴근하며 아이들을 픽업해 함께 밥을 먹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모습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슈퍼우먼’의 모습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이게 저는 잘 안 되는 겁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기 위한 사전 단계로 문화센터를 선택했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 들어가고, 또래들이 있고, 그 안에서 활동을 하면서 순차적으로 적응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는 유모차를 붙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교실 입구의 유모차에서 도무지 내리지 않았어요. 다른 아이들은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행동들이 우리에겐 쉽지가 않더라고요.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가는 것도 어려워해서, 매번 소풍장소가 공지되면 사전답사를 다녔습니다. 어느 정도 공간이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서야 탐색이 가능했거든요.
예전엔 몰랐습니다. 일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혼자서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할 수 있겠지만 (물론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몸이 불편한 남편에게도 손이 가야 하는 상황에서 출산을 핑계로 계속 휴직을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휴직했을땐,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복귀일자가 있으니, 그 때까지 찐하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자’, ‘나는 평생 일할거니, 1~2년 잠깐 쉬어가면 어때?’하는 생각이었어요. 예기치 않게 둘째를 가지고 되었고, ‘복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아이의 임신 사실을 알고 기쁜 감정보다는 막막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 때,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되었어요. 정신과 선생님은 ‘약을 복용하면 감정의 진폭이 줄어드는데, 임신 중이어서 약을 처방하기가 주저된다.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안전한 등급의 약이라고는 하지만, 임신 중 약물은 약물 복용으로 인한 효과가, 예상되는 부작용을 상회할때만 복용하게 된다.’고 하셨어요.
그전까지는 일하지 않는 제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는 저를 집에서 반겨주시는 엄마가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제가 엄마의 모습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자도 일이 있어야 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제 머릿속의 ‘엄마’는 회사에서 만난 ‘아이의 하원시간에 아이에게 전화하며 간식을 챙기고, 일정을 챙기는 그런 엄마’였거든요.
엄마와 자연인으로서의 나,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하고 싶어서, 회사에 다닐 때만큼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버는 사람으로서 기능하고 싶어서, 책도 만들어보고, 주식도 해보고, 온라인서비스도 팔아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일할 수 있을 것 같냐?’, ‘다른 생각 말고 아이나 잘 키워라’라는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어요. 엄마라는 옷을 입는 일이 제게는 늘 편안하지 않더라고요. 육아는 길어야 20년이라는데, 아이들 육아가 끝난 후의 나, 20년동안의 나도 챙겨보고 싶었어거든요. 그런데 최근 아이의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알게 되면서 어쩌면 육아가 내게는 평생의 과업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